♣ 설날 아침에 ♣
설날 아침에
- 김종길 -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시집 성탄제 (1969)-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11연으로 된 주지적 서정시로 밝고 건강하고 건설적인
시상을 알기 쉬운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열띤 감정이나 감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혼돈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으면서 긍정적이
고도 희망적인 인생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시로서 산뜻
한 맛은 떨어지나 의미면에서 우리에게 삶의 깊이를 더하여 주
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설날, 새삼스럽게 인생살이의
각박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화자는 더 높은 이상
의 실현을 위해 그것을 긍정적 · 희망적 삶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대로', '꿈도 좀', '한 살 나이를 더
한 만큼', '좀 더 착하고' 등의 표현에서 설날의 추위와 같은
험난하고 각박한 세상을 슬기로 견뎌내는 여유 있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주어진 삶을 더 지혜롭게 영위하여 기쁨과 보
람을 찾자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작게는 한 가정의 어른
으로서, 크게는 한 나라의 시인으로서 설날 아침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jang.h.s. 공기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