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천주교회

♤♣ 위령성월을 맞으며 ♣♤

공기돌 바오로 2012. 11. 16. 22:45


♤♣ 위령성월을 맞으며 ♣♤

교회력으로 1년의 마지막 달인 11월은 위령성월이다.
위령성월은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기도하는 달이다. 아울러 지나온 
삶을 정리하며 인생의 참 의미와 목적을 묵상하도록 초대
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참으로 은혜로운 때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기도는 가톨릭교회의 고유하고 
아름다운 전통이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무엇보다도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과 희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교회 
가르침에 따르면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만남은 결코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다. 우리는 고립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 그리스도의 
한 형제자매로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바로 죽은 이가 살아있는 이들의 
연대성으로부터 떨어져나가지 않는다는 희망을 드러낼 
뿐 아니라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공동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위령성월의 근본정신은 사랑의 정신이요 하느님 백성 전체를 
향한 한없는 사랑의 표현이다. 이런 까닭에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고 이들을 위해 사랑의 행위와 희생을 쌓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자 특권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신과 함께
 그리스도인들에게 혼자만의 구원은 있을 수 없다는 점도 되새
겨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한 개인의 구원이 아닌 
당신 백성의 구원, 즉 공동체의 구원을 원하셨다. 이 때문에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고 십자가 위에서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고통마저 감내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고 부활하심으로써 
인류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밝혀주셨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참으로 주님이요 하느님으로 믿고 고백할 때,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과 모범을 따라 사랑의 길을 걸을 때 진정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며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지만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삶이 의미있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주님께서는 죽음을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임을 몸소 보여주셨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이라면 나보다는 이웃을 
위해 사는 사랑의 사도여야 한다. 
위령성월을 우리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새롭게 추스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위령성월을 맞는 신앙인의 자세다.

 

 

공기돌 이야기

 

 

청년 송해붕 세례자 요한의 신앙을 소개합니다.
그는 1926년 경기도 부천구 계양면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모태 신앙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는 계산 초등학교, 인천 기계 공고를 거쳐 44년 4월 덕원신학교를 편입하여 신학생 생활을 하던 중 45년 해방 이후 사제가 되기 위한 학업 과정을 중도에 포기하고 계양구 귤현동, 고촌 은행정 마을(현 김포시 고촌면 신곡리 은행정)로 들어가 야학을 운영하며 전교 활동을 벌입니다.

이후 몇 년 간 은행정과 누산리 공소(현 김포시 양촌면 누산리)를 오가며 펼친 전교 활동은 가히 성인의 수준이 아니고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신앙과 열정과 수고는 가는 곳마다 청년이고 어른이고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변화시겼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고 합니다.
"내 별명은 공기돌이야. 공기돌이 무슨 뜻인고 하니 누구든 아쉬운 때 갖고 놀고 싶은 만큼 갖고 놀고 필요 없어지면 버리라는 의미지, 여러분은 이제부터 공기돌 놀이하듯 나와 함께 신나게 공부해 보자."
이렇게 해서 청년 송해붕을 공기돌 선생이라고 불렀는데, 그렇게 사람들에게 버려진 공기돌이 될 때 하느님께서 진주로 여겨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익숙하거나 교훈이 될 만한 구절을 뽑아 교리와 병행하여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 가르침이 얼마나 명쾌하고 재미있고 엄했던지 당시의 제자로서 지금 생존하는 이들의 증언을 들어 보면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청년 송해붕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천주교가 동네에 전파되는 데 반감을 가진 주민 일가의 밀고로 빨갱이로 몰려 총살형을 당하고 맙니다. 그의 죽음은 신앙 전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은 순교였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의 유해를 발굴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과 함께 묻혔으나 그의 십자가와 새까만 주단과 묵주가 썩지 않아 신원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시체와 함께 있던 널판지에는 장미 넝쿨이 우거져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 사람이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의 유해는 계양산에 묻혔다가 김포 성단 묘지로 이장되었다고 합니다.

청년 송해붕 세례자 요한은 평소 세례자 요한처럼 살다가 순교하기를 소원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의 선교 열정을 못다 쏟아냈던 고촌 공소에는 인촌교구 고촌 성당이 들어섰고 그가 열심히 교리를 가르쳤던 누산리 공소에는 인천교구 사목연구소가 들어서 있습니다. 공인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성인의 반열에서 오늘도 살아 활약하고 계십니다.

위의 공기돌이 전하는 말은 그가 괘도에 적어 교우들에게 반복 주지시켰던 일종의 생활 지침입니다. 당신께서 천천히 읽으면서 그 깊은 뜻과 그 강렬한 분발심과 그 큰 안목에 심취하기를 바랍니다.

송해붕 세례자 요한, 그는 한 개인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삶을 살았습니다.

당신께서 "그가 교회였고, 그가 교회를 세우는 또 다른 그리스도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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