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판

현대 판 고려 장

공기돌 바오로 2021. 8. 29. 09:35

 

??현대판 고려장~??

요즈음 자녀들 ‘각박한 세상’
생존경쟁 속에서 부모님 병간호

돌볼 시간 없어...


어쩔 수 없어 요양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할 때

요양병원에서 요양을 한다.

집에서 혼자 생활할 수 없어

요양병원을 의지한다.

나이가 들면 몸도 정신도 불편하다.

그래서 요양원 요양사들과, 환자들과의 관계를 잘 보고 느낀 소감,

그 곳은 유로 수용소이다.

- 식사시간에 음식을 안 먹으면

가져가버리면 끝이다.

- 그 다음 먹고 싶어도 배가 고파도 챙겨준 사람 없는 서러움,

- 소대변 처리시 종종 구박,

- 때로는 요양원이란 이름과 요양사(간병사)란 이름과는 전혀 다른행위

- 종종 때리고 쥐어뜯고 심하게

꼬집어 멍들고, 확대를 받아도
탈출 할 수 없는 삶!

- 노인 학대, 환자 학대!

 자녀들은 알고 있는가..?

​마지막 인생을 요양하다가 가는 곳이 아니요,  내다버린 고려장!
                                             

(고려장 지게 잘 보관해 두셔야지요!)

"엄마 아빠 여기가 왜 멍 들었어"

라고 물을 때이면, 


자녀들 맘 편하게 해주려고
"부딪쳤다", "넘어졌다".

숨기고 감춘다. !

그래서 아는 사람은 요양원에
안 가시려 하신다.

요양원 요양사들의

‘불친절’
‘확대’ 자녀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들은, 어쩔 수 없는 운명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선택(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찌할꼬!

이것이 삶이요, 이것이 인생이다.

제목: (1) 
요양병원과 요양원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어떤 의사가 요양병원에 근무할 때의 일들을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이 의사의 말이
딱 들어 맞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요양병원에 면회 와서
서 있는 가족의 위치를 보면 촌수가 딱 나온다.

-침대 옆에 바싹 붙어 눈물 콧물

흘리면서 이것저것 챙기는 여자는 딸이다.

-그 옆에 뻘쭘하게 서 있는 남자는 사위다.

-문간쯤에 서서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사내는 아들이다.

-복도에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여자는 며느리다.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하고 있는

부모를 그래도
이 따금씩 찾아가서

살뜰히 보살피며 준비해온 밥이며 반찬이며 죽이라도 떠먹 이는
자식은 딸이다.

-대개 아들놈들은 침대 모서리에

잠시 걸터앉아 딸이 사다놓은
음료수 하나를 까먹고 이내 사라진다.

아들이 무순 신주단지라도 되듯이 아들 아들 원하며 금지옥엽 키워

놓은 벌을 늙어서 받는 것이다.

딸 하나가 열 아들 부럽지 않는

세상인 것을 살면 서는 몰랐다.

오늘도 우리 미래가 될 수많은 그들이 창살 없는 감옥에서 의미 없는

삶을 연명하며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도 자신의 말로가 그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자신과는 절대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믿고 싶겠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고 서서히 정신이 빠져 나가면

어린애처럼 속이 없어지고 결국

원하건 원치 않건,

자식이 있건 없건,

마누라 남편 있건 없건,

돈이 있건 없건,

잘 살았건 잘못 살았건,

세상 감투를 썼건 못썼건,

잘났건 못 났건,

대부분 요양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60세가 넘어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밥만 축낸다고 자식들의 지게에 실려 산속 고려장으로 떠났다고들 하는데

오늘날에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노인들의 고려장터이다.
                                        

(옛날에는 지게로 져다 깊은 산골짝에 버렸는데...그래도 요즘은 자동차를 타고 고급 요양원 시설로 끌려가니 그나마 다행이니 너무 서러워 하지말자!)

병이 들거나 넘어져 못 일어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자식들의 의논에 떠밀려 그곳에 유배되면 살아서
다시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그곳이 바로 고려장터가 아니고, 무었이랴!

그곳은 자기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수 있는 곳도,

가기 싫다고 해서 안 가는 곳도

아니다.

늙고 병들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자식들의 보살핌이 한계에 이르르면 (긴병에 효자 없다.)
갈 곳은 그곳 밖에 없다.

산 사람들은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어쩌랴~! 
이것이 인생삶이다.

내 정신 가지고 사는 동안에라도

맛있는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가 보고,
보고 싶은 것 보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지!  

필자!
위의 글을 올려놓고 한번 읽어보니 한숨만 나오며 한심하기 짝이 없더이다.

제목​​:(2)  
어느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

몇 년 전 일이다.

나와 같은 요양병원 병실에는

80세가 넘으신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병은 깊었다.

할머니는 성경을 읽으며 지극 정성으로 할아버지 곁을 지켰다.

아침저녁으로 할아버지의 가족들이 병실을 다녀갔다.

“니” 아버지 이번엔 못 일어나신다.

이젠 화장실 걸음도 못하신다.

조금 전에도 의사가 호수로 오줌을 빼 주고 갔다.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 저녁 할아버지의 막내 딸이

병실로 찾아왔다.

지방에서 올라온 막내
딸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한참

울었다.

할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막내 딸은 3일 동안 할머니와 함께 병실에서 잠을 잤다.

아빠 나 이제 가봐야 하거든

아빠하고 같이 있고 싶은데

그렇 수가 없어 김서방 출근도 시켜야하고 아이들 학교도 보내야해,

그녀는 울먹이며 늙으신 아버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빠!

옛날일 기억나..?

아빠하고 나하고 매일 들길을 걸어서 학교 갔었잖아,

여름 장마 때면 ‘잔뜩 불은 개울물 앞에서’ 아이들과 늘 아빠를 기다렸어,

울 아빠는 작은 아이들을 한 명씩

한 명씩 가슴에 안아 개울물을
건너 주었지..................

아빠는 사랑이 많으신 학교 선생님이었으니까!

아빠가 학교에서 숙직하던 날 기억나지?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내가

눈밭을 걸어서 아빠에게 갔던 날
내발바닥 꽁꽁 얼었다고 아빠가
따뜻한 배 안으로 내 발을 집어
넣었잔아, 얼마나 차가왔을까!

막내딸은 울음을 삼키며 할아버지 가슴에 다시 얼굴을 묻는다.

딸의 울음소리에도 할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아빠 나 이제 가야돼
꼬~옥 다시 일어나야 돼~ 아빠!

옆자리에 서 있던 할머니가

막내 딸의 손을 끌었다.

어여 가거라, 어여!  
네 아버지 다 알아 들으셨을 께다.

할머니는 막내딸을 데리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할머니는 눈물을 닦으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 전에 나간 아이가 우리 막내 딸이라우 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지요,

응석받이로 자라 지금도 아빠아빠 하잔아요.

이제 지 아버지 눈이나 감으면

와야지 뭐.......

아버지를 끔찍이 좋아했는데,......

아버지 얼굴을 마지막 본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슬펐을까...

바로 그때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자... 임자... 
할아버지는 가뿐숨을 몰아쉬며

일르켜 달라고했다.

할머니와 나의 부축을 받으며

할아버지는 한 걸음 한 걸음
창가쪽으로 걸어갔다.

할아버지는 힘겨운 숨을 고르며
창 밖을 살폈다.

창 문밖 멀지 않는 곳에 정문 쪽으로 걸어가는 막내 딸 뒷 모습이보였다.

할아버지는 오른팔을 들었다.

딸의 뒷모습을 어루만지듯 할아버지는 유리창을 쓰다듬었다.

딸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하는 할아버지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다 가만 가만.....흘려내렸다.

<출처:인터넷서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