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천주교회

성인 바오로

공기돌 바오로 2019. 12. 28. 19:21

개요[편집]

바울로는 초기 기독교를 이끈 뛰어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교의를 전하려는 열정으로 아프리카(북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한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를 돌아다녔다. 무려 20,000km에 이르는 거리를 돌아다닌 그의 선교 여행과, 신약성서 27개의 문서 가운데 13편에 달하는 그의 이름으로 된 서신서들은, 초대 교회사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그는 자신이 선교 여행 중에 여러 번 죽을 위기를 맞았다고 말한다. 유대인에게 다섯 번 매를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배가 파선했었다.[4] 그렇게 그는 유대교와 구분된 기독교를 확립했고, 그 교회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바울은 지성 없이 열정만 있는 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 열정은 예수가 왜 그리스도인가를 구약성서를 근거로 변증하는 지성적인 신앙에 뿌리를 두었다.[5] 바울로 사상은 기독교의 교리, 역사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커서 혹자는 "예수가 없었다면 바울로도 없었겠지만 바울로가 없었다면 기독교도 없었을 것이다" 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름[편집]

바울로는 로마식 이름이며, 그의 히브리어 이름은 ‘사울(히브리어: שאול)’이다. 재미교포들이 한국어 이름과 영어 이름을 모두 사용하는 것처럼[6] 해외에서 사는 유대인(그리스말로 흩어진을 뜻하는 디아스포라)들도 히브리어 이름과 라틴어, 그리스어 이름을 모두 사용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로도 라틴어어 이름인 바울로와 히브리어 이름인 사울을 모두 사용했다. 특히 바오로의 경우 로마 시민권을 지니고 있었기에 로마식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한때 기독교인들이 사울이 바울로 개명했다는 주장은 사도 바울로 시대의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7]사도행전에서도 '바울로라고도 불리는 사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8] 바울로의 원어인 Paulus는 라틴어로 '작은', '낮은'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한국어 성서 번역본의 음역 차이[편집]

1900년 완역한 신약성경 전서 음역을 따른 개역한글판(대한성서공회)은 ‘바울’, 공동번역성서(대한성서공회)는 ‘바울로’, 천주교 성경(2005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은 ‘바오로’라고 한다. 성공회는 바울로를 ‘바우로’라고 음역하는데, 그 실례로 1965년성공회 공동기도문과 성공회 소성인전에 바울로를 바우로로 음역하며, 현재도 한국 성공회는 바우로를 신명(信名) 즉, 세례받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으로 사용한다. 기독교 성인. 축일은 베드로와 같은 6월 29일이다. 흔히 귀족적인 용모에 머리숱이 적고 길고 검은 수염을 기른 남성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1세기 이후 등장한 성화에서 볼 수 있다. 이와같이 바울로의 이름은, 현재의 한국 기독교에서 다른 명칭으로 불린다, 이 인물의 이름은 개신교로마 가톨릭교회가 같이 옮긴 공동번역성서의 '바울로'를 공히 사용하려 했으나 양측의 입장차로 인해 이뤄지지 않았다. 동방 정교회공동번역성서를 따라 '바울로'라고 칭하며, 개신교(Protestant Church) 대부분은 1900년 완역된 신약성경전서를 따라 '바울'로, 천주교회(Roman Catholic Church)에서는 2005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옮긴 성경에 따라 '바오로'로 칭한다. 성공회(聖公會, Episcopal Church, Anglican Church)에서는 공동번역성서의 번역에 따라 '바울로'라고 하는데, '바울', '바우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생애[편집]

소아시아 키리키아 지방(길리기아, 현재의 터키)의 중심 도시 타르소스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9]. 출생년대는 신약성서학계에서 기원후 5년 즈음으로 추측하고 있으며[7], 출생 지역과 년대로 미루어 보아 바울은 제국의 시민권이 있었다고 추측하며, 이에 관한 간접적인 기록으로 사도행전 22:25-29에서 바울의 선교 활동 중에 유대민족과의 충돌로 로마군에 체포 되었을 때 자신이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이라고 말한 것을 들고 있다.[10] 여하튼 바울로는 자신의 유대 혈통을 부정한 적이 없으며[11], 게다가 그가 이른바 다마스쿠스[12] 에서 회심하기까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에 앞장 섰다는 점으로 미루어 그의 유대인 혈통에 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13]. 바울로 자신은 자신의 대단한 출신배경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빌립보서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출신배경을 오물에 빗댄다.[11]

학식[편집]

바울로의 서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석할 때 그는 아마 흠이 없는 교육을 두루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어디서 그리고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의 고향이 고대 그리스 문명의 영향 밑에 있었던 관계로 당시의 일반적인 고전 교육 및 유대교적 율법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는 존경받는 율법학자 가말리엘에게서 율법 공부를 받았는데[9], 유대 전통에 따라 구약성서(율법, 예언서), 율법 해석(미드라시), 수사학을 공부했을 것이다.[14] 이러한 체계적 신학교육은 사도 바울을 유대 전통인 율법을 비판할만큼 뛰어난 신학자로 자라게 해 주었다. 사도 바울로가 가말리엘의 제자였다는 사도행전의 설명을 바탕으로 회심하기 전까지 그가 바리사이 파에 적극 협조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바울로의 출생과 유대교의 율법을 추종하였던 젊은 시절의 활동은 자신의 사목방향이나 신학적인 견해에 맞지 않을 경우 타협하지 않았던 그의 곧은 성품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울로는 고대 그리스 문학에도 밝았는데, 사도행전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시인을 인용하여 아테네 철학자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하였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간다.하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또 여러분의 어떤 시인은 우리도 그의 자녀다. 하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 사도행전, 17:28, 공동번역성서[15][16]

사도행전에는 바울로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회심한 이들의 이름을 자세히 적었다. 지식인들의 지성에 맞게 전도한 성 바울로의 전도는 지혜로운 전도였던 것이다.

몇몇 사람이 바울로 편이 되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 중에는 아레오파고 법정의 판사인 디오니시오를 비롯하여 다마리스라는 여자와 그 밖에도 몇 사람이 더 있었다.

— 사도행전, 17:34, 공동번역성서

주요 연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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