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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고발 한다.

공기돌 바오로 2014. 8. 5. 22:49

-----Original Message-----
From: "이용섭"<0820lys@naver.com>
To: "이성구"<lsgoo34@naver.com>;
Cc:
Sent: 2014-07-31 (목) 13:28:29
Subject: 대한민국을 고발 한다
 



空手來 夢收去

 

 대한민국을 고발 한다.

 

 (참전 학도병의 빼앗긴 인생)

오늘날 세월호 희생 학생들의 추모 물결이 전국을 덮고 있다.

정치권 역시도 나라사랑 보훈 빼지를 단 의원은 없고 약속 이나 한듯
하나
같이 노란 리본물결 일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학여행 길에 올랐다가 채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더욱이 부푼 꿈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안전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님
정이야 어찌 헤아리겠는가?

 

정부에서도 세월호 희생 학생에 대한 특별법 제정이다 의사자 지정이다,

추모공원과 추모탑을 건립하는 등 다각적인 지원이 논의되고 있다.

 

이보다 훨신 더한 그 무엇을 제공한들 어찌 찢어지는
아픔을 달랠 수
있겐는가?

 

그러나 국민 모두는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쉽게 잊고 있다.

6.25참전 소년,소녀 학도병의 슬픈 역사다.

 

 참전 64년이 흐른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소외된 그늘 속에서 오랜 전투

의 상처를 안고 평생을 통한과 고통 속에 살아온 6.25참전 학도병에 대해서

는 함구하고 있다.

 

국가와 민족으로부터 소외된 그늘에서 세월호 희생 학생을 바라보는 학도

병의 마음은 어둡고 서러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솔직히 세월호 희생 학생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우다 희생한 것이 아니

라 수학여행길에 안전사고 희생한 것이 전부다.

 

어찌 안전사고로 희생한 학생이 세월호 희생 학생들뿐이랴?

그렇다고 세월호 희생 학생에 대한 특별법 제정이나 추모공원 조성에 이의

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월호참사자들"의사자"지정만은절대 안된다,

 

이 어린학생들이 국가를위해 의로운일은 하다

義死했단말인가?

 

정부의 무원칙 무소신 불균형을 비판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6.25참전 학도병은 세월호 희생 학생들보다도 더 어린 14•16세 홍안의 나이

에 6.25전쟁에 현역병 또는 아메리카 합중국 소속 병으로 차출되어 4년5년

수많은 전투를 수행하고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한 참 주역임에도 참전

64년이 흐른 오늘에 이르기까학도병의 실체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정부의 불균형 정책을 지적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홍익인간을 이념으로 인권을 최대로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치국가임을 건국이념으로 하고 있다.

 

학도병도 같은 국민이며 같은 학생인데 어떻게 유독 학도병의 실체조차

인정치 않고 멸시와 천시로 일관하는가?

 

올해도 어김없이 6.25, 그날은 찾아왔다.

그날이오면 누구보다 비통함과 전상(戰傷)의 한 매친 그날의 아픔이 북받

쳐 오른다.

 

6.25참전 학도병은 1950년 북한 공산침략이 낙동강까지 이르러 대한민국의

운명이 지극히 비관적인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각급학교재학 중 14•16세 어

린나이에 현역병에 징집되어 수많은 전투수행으로 인생 모두를 조국에 받친

 역사의 조난자다.

 

14•18세미만 학도병은 부모의 그늘에서 국가사회의 보호를 받으며 학업에 전

해야할 어린 학생으로 국제법상 현역병 징집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전시를

빙자하여 피난길 거리에서 부모 형제에게 연락할 틈도 없이 거리 모병관에

 의해 자.타 불문 현역병또는 8240국제연합 한국유격군에 징집되어훈련받을

틈도 없이 곧바로 전선에투입 되었다.

 

14•18세미만 소년,少女 학생들의 현역병,아메리카합중국 8240한국유격군 

징집은 대한민국이 세계 초유의 범죄행위 이었다,

 

그 포악했던 일제 강점기에도 14•18세 한참 배움의 길에 있는나이어린 학생

들을 현역병에 징집하지는 않았다.

 

그 악명 높은 힛틀러나 크메르루즈도 어린 학생들을 현역병에 징집하

지는 않았다.

 

정부는 나이어린 학생들의 징집 사실을 국제사회의 이목을 의식하여 철저

하게 은폐해오다가 참전 60년인 2010년 2월에야 비로소 그것도 학도병이

닌 소년병의 참전 실체를 밝혔다.

 

어린나이에 현역병에 징집된 우리는 훗날을 생각할 틈도 없이 오직 국가

민족을 위해 싸우다가 죽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4년5년 기약 없는 전

를 수행했다.

 

학도병은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영천 기계안강 포항전투 등등 낙동강 전 전선

에 투입되어 파죽지세로 몰려 오는 적을 목숨으로 지켜냄으로 낙동강 교두보

구축의 신화를 낳았다.

 

우리는 흔히 인천상륙의 영웅을 맥어더장군을 기억한다.

그러나 인천상륙을 가능케 한 참 주역인 학도병의 희생과 공훈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인천상륙작전에 8240국제연합 한국유격군은 7월초부터 仁川앞바다 수십을 축정

일본준둔 미 극동사령부로 수시로 보고는 물론 인천앞 수많은島嶼(섬)에 인민군

주둔실체 상황 확보 수시로 극동사령부에 보고는 물론 인천상륙작전 9.14일 야음

여흥적군진지교란 작전과 아울러팔미도 등대 탈환작전에성공 9월15일 인천 상

에 성고하게한8240.KLO한국유격군 18세미만 少年병들의 활약상의 공적은

매우지대하였다.

 

낙동강 교두보 구축은 인천상륙작전을 가능케 하였을 뿐 아니라 UN군 참전의

을 만들어 줌으로 UN군,미해병대,한국8240,한국군군 병대,한국군17연대,연합

의 상륙작전을 성공 시키게한 전술적 가치에서 학도병의 희생과 공헌의 가치

를 찾아야한다.

 

당시 국군의 80%가 문맹이며 전의마저 상실한 당시의 처절했던 현실에서 학

도병의 공훈은 짐작하리라 믿는다.

 

대한민국은 학도병의 희생으로 지켜진 나라임을 거부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만일 학도병이 낙동강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대한민국의 운명이 어찌 되었

을까? 여기서 답을 구해야 한다.

 

국토의 92%가 점령당하고 8%밖에 남지 않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판가름한

전투가 낙동강 전투다.

 

낙동강을 지켜냈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을 가는케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으며 전세계의12권안에들수있게한1조달러의 수출 강국도 존재

할 수 있음을 국민은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6.25전쟁의 영웅을 백선엽 장군을 지칭 한다.

그러나 전쟁은 육군 이등병과 군번도계급도없이 적후방에 야음을틈타 투입

전투임무를수행한 8240국제연합 한국유격군18세미만 학도호국병사들이 있었

에 가능했다고 자부한다.

 

따라서 6.25전쟁의 참 영웅은 1950년 낙동강을 목숨으로 지켜낸18세미만학

도병들과 군번도계급도없이 참전한8240국제연합한국유격군에게 "護國英雄

(호국영웅)"칭호를 부여해 주어야한다.

 

윤한균 창립 대표는 4형제가 학도병으로 참전하여 3형제를 잃었고 아직도

전사한 형제들의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이강성은 경기도 옹진태생으로 그당시 강령농업중학교 3학년생이였다 당시

한국군17연대 연대본부가 우리학교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38선 국경지대에

근접해 있는지대 중학교 3학년학생들모두는 제식훈련은 물론 소총사격훈련

까지 연마하였다.

 

1950년6월24일은 토요일인 관계로 오전 수업을 끝마치고 학우다수는 38선

국경선 까치산 일명 최치고개로 탄피수집차 방문 경비군인들중 우리학생들

소총사격 기술을 연마시켜 주신 군인들 우리학생들 반갑게 맞이하며학생들

잘 올라왔다 오늘 토요일 우리군인들과 전방 경비근무도 실천하기겸 오늘

은 이곳에서 밤지내고 내일 집에 가는것 어떠냐고 주문해와 우리들 이구동

으로좋습니다.응대하고 군인들과 항고밥을 지어먹고 건빵도 서로나누어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나누다 자정이 넘어서 도지카안에들어가 외출나간

군인 담요 한자락 덮고 자든중 벼락치는 포성 소리에 잠에서 깨여나 벌벌

뜰고 있든차 군인하사람 황급 히 뛰어들어오면서 학생들기상,기상,심상치

안는 전투가 벌어젔으니 빨리 하산집으로 가라는 통보받고 황급히 하산약

1.5km지점에 新강령이라는곳 도착 17연대 헌병들이 우리학생들 가로막으며

학생들 외출나간 군인들 귀대할때까지 까치산으로 다시 올라가17연대군인

들과 적군조우하여 전쟁하라는 것이였습니다.

 

우리학생들은 벌벌 뜰면서 제발집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하든 찰라 헌병

한사람이 우리학생들 발밑으로 총을 난사하면서 말안드러면 직결 처형

하겠다고 고성지르며 위헙주는바람에 하는수없이 헌병이 지급하는 아시보

장총과 실탄지급받고 까치산으로 다시올라가든중 집채같은 적군의 탱크에

밀여 후퇴하든 17연대군인들과 만나 밀이고 밀이는 전쟁을1950년 6월 26

일 밤 자정경 가막개선창에서 기선에 승선 집에도 가보지도 못한채

후퇴해야만했든 중학교3학년생 학도병.

 

 학도병의 부모들은 피맺힌 한을 안고 세상을 뜬지 오래다.

세월호 희생 학생보다도 더 어린 아들 들이 전쟁터에 끌려가 죽었으니

그 부모의 슬픔이 어찌 그들에 비할 것인가?

 

학도병의 죽음은 안전사고가 아닌 국가의위난에 투입된 총알받이 인명경

시의 희생이다.우리는 대한민국의 법•철학적 빈곤과 무원칙 무소신 불균

형의 역사관을 판하는 것이다.

 

아무리 전시라도 할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18세미만은 국제법상 아동으로 규정하고 현역병 징집을 법률로 금지하고

있음에도 어린 학생들을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투입 한것은 국제법을 거

반인륜적 범죄해위로 비판받아야한다.

 

더 명백한 범죄 사실은 1951년2월28일 이승만 대통령의 학생 복교령이 발령

되었음에도 복교조치 없이 4년5년 수많은 전투를 수행케 함으로 학도병의

희생을 더욱 키웠다.

 

정작 나가 싸워야 할 어른들은 살기위해 피난길을 찾았고 동기동창 학생들까

지 먼 나라로 피난 유학을 떠날 때 힘없고 ‘빽’없는 우리 학도병은 기약 없

는 계속된 전투를 수행으로 3천여명의 어린 생명이 전장의 이슬로 살아져

했다.

 

당시만 돌려보냈어도 학도병의 많은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학도병에게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최소한의 인권조차 주어지지 않

았다.오직 내일을 기약 할 수 없는 계속되는 전투 뿐 이었다.

 

며칠이면 끝나겠지 하던 전쟁도 또한 서울을 탈환하면 돌려 보내준다던

약속도 3년이 가고 4년이 가고 5년을 훌쩍 넘겼다.

 

이제는 학교로 돌아가리라는 꿈을 접어야 했다.

무한한 성장발달의 잠재력을 지닌 꿈 많던 학도병의 희망은 여지없이 짓

밟히고 계속된 전투로 학습이 정지 되고 진학의 길차단 등 저학력자로 전

락되어 전역 후 사회정착에 사회경제적 희생으로 가난을 대물림 하는 등

평생을 전쟁의 후유증으로 좌절과 통한의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오늘날 아버지가 아들의 훈육상 매를 댄 것도‘아동학대죄’를 적용 2년형

을 구형하였다.

 

대한민국이 나이어린 학생들의 현역병 징집은 국가폭력이며 아동학대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것이며 어떠한 논리로도 덮고 갈 수가 없다.

 

우리는 학도병의 숭고한 호국구국의 실천정신을 계승 선양하고 학도병의 항구

적 명예 보존을 위한 입법을 위해 국가보훈처의 문을 수없이 두드렸고 청와대

와 국회 정부 각 요로에 수많은 탄원을 하였음에도 아직도‘빽’의 위력은

존재 하였다.

 

우리는 현재 전국적인 자생적 학도병 단체를 이미 법적단체로 승인한 재일학도

의용군 수준의 예우를 받고자 할 뿐 이다.

 

같은 학생의 신분으로 같은 전쟁에 참전한 18세부터 45세인 재일 청년학도들이

이미 52년 전인 1962년에 법적단체로 승인 하였다면 한국학도병의 주장은 당

연한 것이 아닌가?.

 

참전 유공자중 유일하게 징집의무가 없는 나이어린 학생의 신분으로 참전함으

로 가장 큰 고통과 가장 큰 희생을 가져온 단 하나뿐인 대한민국 학도병의 요

구가 지나치던가?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해야 하며 자기의 의사에 반하여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라고 헌법에 밝히고 있다.

 

아무리 전시라 할지라도 국제법상 국가사회의 보호 대상인 미성년 학생을

역병에 징집하고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투입한 것은 대한민국이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행위로 비판받아 마땅하며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어떻게 인권을 최대로 존중한다는 대한민국이 이토록 비도덕적 비윤리적

명경시국가로 전락하였는지? 안타깝다.

 

인권이 없다는 북한에서도 우리 학도병과 같은 경우영웅대우를 한다는

어느 탈북 안보강사의 전언이다.

 

학도병의 오늘의 현실에서 어떻게 대한민국이 북한의 인권을 비판하고 일본

군 성 노예에 대한 만행을 규탄할 수 있는지? 심히 우려스럽고 안타깝다.

 

어린 목숨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이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며 1조 달러

수출 강국으로 발전하였다.

 

?堧瀛寬??중요하지만 참말로 욕본 사람이 국가와 민족으로 부터 우대받

사람이 우선되는 국가건설이 절실히 요구된다.

 

사람이란 망각이 있다.

그러나 불과 64년전 학도병의 희생과 공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잊고 사는 민족은 또 다른 불행을 가져온다. 라는

교훈이 있지 않은가?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과거는 없고 현재만 존재하는 역사 없 나라로 전락

하였는지 한탄스럽다.

 

오늘날 북한의 계속된 도발로 대한민국 상공에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과연 학도병의 소외된 오늘의 천시에서 누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쳐 나가 싸우겠는가?

 

근자 서울대생을 상대로 설문조사에서“전쟁이 날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설문에 80%가 외국으로 도피하겠다.라고 응답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또한 요사이 사회 일각에서“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라는 유행어도 확산되

있다. 당연한 귀결이다.

 

대한민국의 무원칙 불균형의 역사관에 항거한 국민적 반항이다.

오늘날 학도병에 대해서 세월호 희생 학생반만큼만 관심을 나누어 주어

결코 이토록 서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1950년 포항전투에서 산화된 이우근 학생을 비롯한 15•18세 나이어린

수많은학생들이 전장의 이슬로 산화되었다.

 

대한민국은 이토록 수많은 어린 학도병의 죽음을 무슨 말로 덮고 가려

 하는 것인가?

 

이토록 나이 어린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 몬 자 과연 누구인가?

학도병에 대한 계속된 함구는 국격을 상실하는 것이며 과거는 없고 현재

존재하는 역사 없는 나라로 추락하는 길이다.

 

그 나라의 국격은 그 나라의 보훈제도에 있다. 라고 한다.

오늘을 지배하는 위정자 여러분은 과연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엇

을 했는지?

 

또한 여러분은 역사를 바로세우고자 자기 책무를 다 했는지 깊은 반성

성찰이 절실히 요구된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자리잡기위해서는 정부는

학도병의 징집에 깊이 사죄하고 그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 입법에 인

해서는 안 된다.

 

이제 정부는 학도병의 잃어버린 인생을 조건 없이 돌려주어야 한다.

학도병 예우를 위한 입법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무다,

 

더 이상 늦출 때 분노의 함성 높을 것이며 비인도적 반인륜적 국가폭력

의한 인명경시 법죄국가의 오명을 덮고 갈수 없을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한국학도의용군전우회 회장    손 주 형

 한국학도의용군전우회부회장   박 규 철

한국학도의용군전우회 사무총장 신 현 수

한국학도의용군전우회 창립대표 윤 한 균

구국300정의군결사대 공동대장 이 강 성

 

대한민국에 재일학도의용군이 존재한다면 전쟁 당사국인

대한민국에 한국학도병의 존재는 당연한 이유다.

 

2014. 7. 6